안상홍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하나님의교회는 영생의 축복이 넘치는 교회입니다.
전 인류가 하나님의교회 안에서 구원의 축복을 가득 받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교회는 안상홍님께서 친히 세워주시고 본 보여주신 그대로 새언약 안식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새언약 안식일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라는 표징을 삼아주시고 그리스도를 찾고
구원의 길로 나아가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성경 그대로 새언약 안식일을 지켜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길 바랍니다.
321년 이전 일요일 예배 기록에 대한 거짓 주장을 살펴보자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자들은 이그나티우스 서한과 바나바 서신에 기록된 일요일 예배를 인용하며 "321년 콘스탄틴에 의해 일요일 예배가 강제적으로 시작되었다면 그 이전에는 일요일 예배가 없어야 한다. 321년 이전에 일요일 지킨 기록들이 있으니 초대교회가 안식일이 아닌 일요일을 지킨 것이 분명하다"라고 주장합니다. 이 주장이 왜 거짓인지 알아봅시다.
[역사와 성경의 가르침]
◈일요일 예배가 321년에 처음 도입되었다고 우리가 가르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비밀과 생명수의 샘 제9장. 지나간 역사는 장래 일의 그림자]
사도시대의 진리는 완전한 진리다. 그러나 사도시대의 진리가 변경된 시대는 사도들이 다 세상을 떠난 후, 즉 주후 100여년 이후부터 일요일 예배 주장이 시작되었다. 사도 바울은 이 때를 두고 예언하기를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살후 2:3~7)하였다. 이불법의 활동은 사도시대 말경으로부터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점점 장성하여 큰 세력을 잡게 되어 로마 황제 콘스탄틴까지 입교하게 하였고 황제의 권위가 교회를 주장하게 하여 주후 321년에는 일요일을 예배의 날로 규정한 법령까지 내렸으며...
◈초대교회의 기록인 성경으로 예배를 증거할 수 있습니까?
저들이 인용한 문서가 초대교회의 기록입니까? 아닙니다. 그것들은 모두 2세기 즉 사도시대 이후의 기록으로서 진위여부도 불확실합니다(보충설명 참조).
그러므로 이그나티우스 서한이나 바나바 서신은 결코 초대교회가 일요일을 지켰다는 증거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면 초대교회에 관한 기록은 무엇닙니까? 다름 아닌 신약성경입니다. 따라서 저들은 신약성경에서 일요일 예배의 근거를 제시해야 합니다. 그러나 신약성경 어디에도 일요일 예배에 대한 기록은 없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성경 외에 다른 문서들에서 일요일 예배의 근거를 찾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세상 끝날까지 지켜야 할 안식일
이그나티우스 서한이나 바나바 서신뿐만 아니라 다른 어떠한 문서들을 제시한다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께서 안식일 세상 끝날까지 지켜야 할 하나님의 계명으로 증거하셨기 때문입니다.
마 24:20~21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마지막 환난의 때에 도망하는 일이 왜 안식일이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셨습니까?
이는 성도들이 안식일에 도망하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우리가 세상 끝날까지 안식일 예배를 드려야 함을 예수님께서 분명히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아닌 문서들까지 끌어들여 마치 사도시대부터 일요일 제도가 있었던 것처럼 미혹하는 저들의 주장은 모두 거짓에 불과합니다.
☞ 보충설명
◈안디옥 교회의 감독이었던 이나티우스는 2세기 초 로마 트라야누스 황제의 박해 때 안디옥에서 로마로 압송되어 가는 중에 7편의 서한을 보냈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위조문서들이 추가되어 모두 15편이 되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중 3개만이, 어떤 이들은 7개가 원본이라고 합니다.
그중 저들이 인용한, 마그네시아 교회에 보낸 서한은 익명의 작가(일요일 옹호론자)에 의해 주후 300년경에 증보된 위서(爲書)로 학자들간에 논쟁이 된 문서입니다.
◈'바나바 서신'은 바울과 함께 전도여행을 다녔던 바나바의 이름을 붙여서 자신의 주장에 사도적 권위를 부여하려는 불순한 의도에서 만들어진 문서로서 4세기의 유세비우스를 포함해 대부분의 학자들이 위서(爲書)로 분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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